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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국립발레단 허난설헌 _수월경화 (May 7, 2017)

Wolllang 2017. 5. 11. 01:31


이번 리뷰도 어김없이 아주 매우 많이 늦었음.



화창한 5월.. 이지만 초미세먼지 경보가 뜬 일요일 오후 예술의 전당.



발레 허난설헌을 보러 갔다. 강수진씨가 감독을 맡은 이후로 창작작품이 꽤나 활발하게 올라오는 듯하다. KNB 무브먼트 시리즈도 점점 번창하며 다양한 작품이 선보이는 중인데다가 이렇게 장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작품이 발레라는 장르 단체에서 나오는 것을 볼 줄이야.. 그만큼 편견이나 시야가 많이 사라지고 융합과 협업이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공연시간은 1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내용과 음악, 안무의 밸런스를 고려하면 적절한 러닝타임이었다.


먼저 허난설헌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이이다. 평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집안 분위기로 인해 여류시인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문집을 간행했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명문가의 김성립과 결혼했지만 글 쓰는 여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댁의 분위기, 기방을 들락거린 남편으로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시달렸다. 결국 친정 가문의 몰락, 자녀와 가족들의 죽음, 그로 인한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인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夢遊廣桑山 꿈속에서 광상산에서 노닐다.
碧海浸瑤海 창해는 요해로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청란은 채란과 어울리는데.
芙蓉三九朶 연꽃 스물 일곱 떨기 늘어져,
紅墮月霜寒 달밤 찬서리에 붉게 지네.


난설헌의 시 규원가 중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하는 부분이다.


10년도 더 전에 난설헌에 빠져 소설로 나온 그의 일생을 탐독하고 시를 찾아본 적도 있다. 그 소설 이름이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였던 것 같은데.. 책장 어딘가에 있을 듯. 일찍 요절하지만 않았어도 신사임당보다 더 이름을 떨쳤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허난설헌의 시 자체를 무용화 한 작품이다. 공연 프로그램에도 직접적인 해설보다 표현하고자 한 시만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공연 내내 국악이 탄탄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발레 동작을 했지만 마치 한국무용을 보는 듯 흩날리는 선을 그렸다. 무용수들의 춤과 의상, 조명, 무대배경이 한 데 어우러져 마치 사군자가 무대에 피어난 듯, 먹물이 화선지에 번지듯 무대라는 큰 폭의 그림에 끊임없이 붓이 움직이는 듯했다. 발레 동작의 표현 범위가 이렇게나 넓은 줄은 미처 몰랐다. 발레인듯 한국무용인듯 현대무용인듯 눈이 홀리는 아름다운 무대였다.


다만, 초연 무대라 그런지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었다. 지인들은 자잘한 실수가 있었다는 말을 했지만 맥락상 크게 의미부여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갖가지 장르를 한데 어우르며 무리를 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한국의 춤은 유려하게 흘러내리나 한국의 음은 명료하게 떨어뜨리는 색을 가지고 있다. 발레는 한국무용과 달리 큰 동작과 빠른 템포가 끊임없이 물고 이어지며 눈을 즐겁게 하는 예술인데 국악의 음에 발레를 맞추려다 보니 선이 끊기고 튕겨나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한 음악과 무대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눈을 괴롭혀 답답했다. 이 외에도 발레 동작에 한정되어 정서를 표현하려다 보니 음악과 분위기에 맞지 않는 동작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현대무용에서는 크고 시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발레라는 원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었다.


어쨋든, 공연의 감동을 전달하는 데는 충분했고 마지막 부분에는 난설헌의 애달픔이 오롯이 전해졌다. 공연을 1회차밖에 보지 못해 아쉬웠다. 최소한 두 번은 봐야 마음에 닿을 것 같은데..



공연 후 오페라하우스 입구,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배너가 보여서 한 컷:)

역대급 현대무용 공연이 될 것이다. 직접 보는 행운을 누리시길.



포스터 디자인만으로도 역대급이다. 오랫동안 내 방 한 켠을 장식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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