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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랴도 태평성대', 국립현대무용단 X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젝트_'예기치 않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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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랴도 태평성대', 국립현대무용단 X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젝트_'예기치 않은'

Wolllang 2016. 9. 17. 02:45

 

 

2016 다원예술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x 국립현대무용단 퍼포먼스

: 예기치 않은>

2016 Multi-Arts Project MMCA x KNCDC Performance

: Unforeseen

 

8월 프로그램 '이랴도 태평성대' _ 이태원 리뷰

 

 

 

"이려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려도 성대(聖代)로다.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성화(星火)는 바치어 무엇하나/속상도 일도 하도 많으니/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늴리리야 니나노/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범나비는 이러저리 퍼벌벌 꽃을 찾아 날아든다."

 

이랴도 태평성대의 모티브를 이룬 노래들이다. 두 곡 모두 태평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국악 가곡, 다른 하나는 해방 후의 신민요이다. 후자는 전통적인 국악과 일제와 신문물에 의해 변질된 국악인 듯 하다. 공연은 여러 단편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랴도 태평성대니나노와 같은 태평가의 조각들이 매 작품마다 끊임없이 나타났다.

 

 

난해했다. 중간에 나가는 이도 많았고 나도 솔직히 중간에 힘든 부분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국악과 현대무용, 미술이 절묘하게 잘 조화된 이런 공연은 흔치 않다. 국악을 죽어가는 예술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고루한 가야금 산조나 튕기고 10시간짜리 판소리를 하루 종일 듣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징글징글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국악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고 안무가의 몸짓과 프로젝터를 이용한 영상이 어우러져 다차원적인 메시지와 현대예술작품의 세련미를 갖춘, 국악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깬 작품이었다. 특히 공연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음악, 국악은 그 주법마저 빠른 템포와 현대예술의 난해함을 조금만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공연.

 

 

 

장소는 국립현대미술관 멀티프로젝트 홀이었다. 대부분 미술 작품, 시각적인 조형물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멋진 스테이지와 뜬금없는 국악 공연은 분명 예기치 않은것이리라. 흩어지는 기억을 쓸어 모아 쓰는 리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처음은 스크린의 텍스트를 통한 한국 국악의 소개와 국악 가곡 태평가를 부르며 시작했다. 유서 깊은 전통 음악이 일제 강점기 동안 국악이라는 일제의 틀에 묶이고 난도질 당한 후 해방 이후에는 정부와 단체들이 그 잔재를 그대로 이었다고 한다. 또한 일제의 문화탄압과 해방 이후 니나노로 대표되는, 국악 저급화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악은 원래의 맥을 되찾아 현대에 어우러져 살아나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연주자들이 직접 연주를 하며 노래도 불렀는데 새된 소리? 새소리와 같은 독특한 소리로 불러 해학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세번째 작품에서는 동화와 같은 영상이 나왔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할세.’ 용비어천가를 성우가 수십차례 계속 읊다가 갑자기 뿌리깊은 나무는 도끼로 베어버려야지라 말하며 나무를 베어버리는 영상이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장면이었지만 이 나무는 마지막에 다시 살아난다. 이 작품은 앞서 텍스트로 소개된 국악의 역사와 오버랩 되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현대까지 살아남은 국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다.

 

 

공연 중반부, 이번 공연의 가장 메인이라 할 수 있었던 작품이 있었다. ‘이랴도 태평성대를 계속 부르며 화면에서는 우리나라 근, 현대의 가장 참혹한 장면들이 스쳐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영광스런 장면들이 나타나다가 어느 순간 비극들로 바뀐다. 안무가 이태원이 나와 고통이 담긴 듯한 몸짓을 선보이며 6월항쟁, 5.18 민주화운동, 4.19 혁명,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해방 후 혼란, 일제강점기의 위안부, 731부대의 생체실험, 관동대지진 학살과 같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참혹한, 피로 물든 사건들의 가장 적나라 한 사진을 흑백으로 보여준다. 어느 순간 화면의 빛은 붉은 색으로 물들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인골과 잘려나간 시신, 부상자와 희생자들의 사진에 더해진 이랴도 태평성대의 노랫말은 마치 이래도 태평성대니?’ ‘이런 비극이 끝없이 이어져 왔는데 정말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묻는 듯했다. 옴니버스 식의 구성으로 열 편 가량의 단편 작품을 연이어 공연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 작품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야, 우리도 인제 먹고 살 만해. 이정도면 잘 사는 거야, 태평성대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아니 할 자격이 있는 건지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종반부에 있었던 한 작품은 아직도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한문이 빼곡한 고문서와 지도, 음성학을 배울 때 봤던 사람이 발성하는 장면을 찍은 엑스레이 영상이 교차되어 나왔던 작품이다. 내가 추측하기로 흔히 조선시대 태평성대라 칭하던 세종대왕 때의 업적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국경을 확장시킨 업적이나 사람의 발성구조를 본떠 한글을 만든 것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안무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떤 의미인지 꼭 질문하고 싶다.

 

 

이랴도 태평성대, 억양과 맥락에 따라 축원하고 일갈하고 묻고 기원하고 비웃고 체념하는, 되뇌어 볼수록 잡히지 않는다. 이 읊조림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맞이할 미래는 태평성대가 되길 바라는 작은 바람이 드리운다. 국립현대무용단 X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프로젝트 예기치 않은’,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이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않은 주제로 국악과 무용, 시각 예술이 융합된 예기치 않은 장르를 다룬 공연이라는 점에서 주제에도 잘 맞고 예술성도 높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

Communicator '춤사이' 4'

J. CHOI.

무단 전제 및 재배포 금지.

 

 

Artist 이태원

이태원은 2005년부터 음악동인고물과 함께 조선음악유산의 문법을 통한 음악적 언어의 장에서 벌어지는 미시정치적, 거시정치적, 현실정치적 폭력들을 주제로 공연을 해왔다. 암묵적으로 승인되고 합의된 지점에 담론적, 음악적으로 끊임없이 긴장을 가하는 그의 작업은무대화한 다큐멘터리의 형태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랴도 태평성대>, 2016

이태원과 음악동인고물이 이 공연에서 갖고 노는 과거는 가곡이라고도 불리는 갖가지 시조들이다. 시조(時調, contemporary tune)는 현재의 노래라는 이름을 가진 고물 노래이다. 그 중 태평가를 모티브로, 태평성대라는 고대의 이름을 가진 현재들, 가짜 현재인 과거들과의 불화에 마주한다. 고대의 모조품을 과소비함으로써 위악적으로 표시했던 태평가는 과거라는 이름을 달고 미래만이 가능한 노래이다. 이 공연은 마치 러시안 인형이 끝없이 더 작은 껍데기로 들어가듯 끝 모르는 외부로 탈출해야 했던, 그러나 가위눌린 꿈처럼 나가도 나가도 언제나 제자리였던 시조를 닮아간다.

 

'예기치 않은' 퍼포먼스 시간표.

공연장소_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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